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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118
제목:Genesis Q : 제25화 결전 제 3 신토쿄시 - Part.D

조회:150
작성일:2008-06-06 10:53:49
수정일:2008-06-06 10:53:49

게시물주소: http://evangelion.ohpy.com/236543/118

글내용 본문

NEON GENESIS EVANGELION
「Genesis Q (제 25 화 Part.D)」




「목소리」는 희미해지듯 멀리 사라져 갔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아스카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지는 그것이 아스카가 틀림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비명이었다.
아스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신지의 머리는 더 없이 혼란스러워진다. 안 된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아스카가 위험에 처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만으로도 신지는 집중력을 잃어, 온몸으로부터 끌어모아 다듬은 힘이 흐트러져 산산이 흩어져 간다.
바로 눈앞에까지 위험이 다가와 있다는데.
자신은 그 남자의 배를 갈라서 미즈호를 위기에서 구해 내야만 하는데.
그 이름이 망치가 되어 머리를 때렸다. 위험을 각오하고 돌아보았다. 상점가 아케이드의 타일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이 가득 맺힌 커다란 눈으로 미즈호는 미소짓고 있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그 목에는 검은 목걸이가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앞으로 14분 정도가 지나면 그것이 미즈호의 머리를 날려 버린다고 한다.
현실감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꿈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오른팔의 열기가 천천히, 하지만 뚜렷하게 가르치고 있다. 아픔마저 느껴진다. 두 배는 부풀어 오른 오른팔이 배출구를 찾아 지끈거리고 경련을 일으킨다.
그 앞에는 사람의 모습을 한 공포가 있었다.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 채 지금은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 그 모습만을 본다면 선 채로 잠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얼마만큼의 방대한 「힘」이 다듬어지고 있는지 에바를 지닌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스스로의 봉인을 하나씩 해제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신지를 죽이기 위해서.
아스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틀림없다. 아스카라면 괜찮을 거라며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믿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갈 때까지 아스카라면 괜찮을 거라고, 믿고 기도했다. 시들어 가던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아스카를 구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하나.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눈앞에 있는 완고하며 위험한 남자를 쓰러뜨린다. 일격, 그 이상은 쓸 수 없다.
아니, 필요없다.
그러니까 아스카, 기다리고 있어.
흩어져 있던 힘을 다시 끌어 모은다. 아직이야, 아직 할 수 있어. 아스카를 위해,미즈호를 위해서.
난폭하게 구는 오른팔을 억지로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끝없이 넘쳐나는 「힘」을 온몸으로 풀어놓듯이 하여 가다듬는다.
휩쓸려서는 안 된다.
눈앞의 남자에 감응하여 폭주하기 직전인 에바의 「힘」을 이용한다. 이식한 리키의 에바를 제어해 보인다.
부풀어 올랐던 오른팔이 조금이지만 가라앉아 간다. 신지의 오른눈이 불타는 듯이 짙은 붉은색의 빛을 띤다.
일격으로 끝낸다.
물러설 곳은 없다.






리키는 언제라도 맨앞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에바를 이식하는 데 성공한 것은 열네 번째였지만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 몸에 깃들인 에반게리온은 최강의 전투형. 한 인간의 몸이 얼마만큼의 전투능력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가를 궁극으로까지 추구한 순수한 살육병기였다.
실전 테스트라는 이름의 전장을 얼마나 겪어 왔을까. 커다란 그 몸에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을까. 아직 소년에 지나지 않는 그 팔을 몇십, 몇백 종류의 피로 적셨을까.
리키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화를 내는 일은 있었지만 우는 일은 없었다. 기분이 불쾌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이성을 잃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동료들 앞에서는.
리키는 언제나 맨앞에 서서 그 커다란 몸으로 온갖 것들을 받아내 왔다.
그것을 자부했던 적은 없다.
그것을 새삼스럽게 말했던 적도 없다.
리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름대로 생각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칭찬 받기 위해서,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울어주기를 바라서 해 온 것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 목숨이 다할 때까지.
리키의 몸 안에서 한 자루씩 사슬이 끊겨져 간다.
지금까지 단 한 번 그것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부상을 입은 채 눈이 덮인 벌판에서 도피하던 중, 하늘과 육지에서 헬기와 장갑차를 포함한 한 개 중대가 그를 향해 점차 거리를 좁혀 왔다. 절체절명의 상황. 리키는 그 때까지 억눌러 왔던 그것을 처음으로 해방했다.
그 후의 일은 아무 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다.
정신을 차렸을 때 반경 500 미터 이내에서 움직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고철덩어리와 불꽃과 살점과 연기, 그리고 핏물로 고인 웅덩이만이 존재했다.
그 때, 처음으로 리키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았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어쩌면 이렇게 서투른 것일까.
이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신에게 기가 막혔다.
조금 더 머리가 좋은 녀석들이라면, 조금 더 요령이 있는 녀석들이라면, 조금 더,조금 더, 조금 더......

마음속으로만 웃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가능한 범위에서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역할을 다른 누구에게 부탁하라는 말인가?
부탁 따위는 할 수 없다. 자신이 해야만 한다.
마지막 한 자루가 끊어져 나갔다.
뒤통수에서 찌릿찌릿한 진동이 전해져 온다.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온몸을 치달리는 환희였다. 해방된 짐승의 포효이 기도 했다.
드디어 시작된다.
이 모습을 동료에게 보이는 것만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이 모습을 마이와 메이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고맙다, 모두들.
언제나 보호자인 척 하는 이런 한심한 나를, 비웃어, 달라구.
소리를 내며 양쪽 어깨가 부풀어 올랐다. 그것에 호응하듯 양팔도 또한 늘어난다.
몸 안의 에바가 미친 듯이 증식을 되풀이한다. 근육이, 뼈가, 혈관이, 인대가 맹렬한 기세로 재구성되어 간다. 시간으로 치면 십 초. 그것으로 끝났다.
두 배 정도 더 커진 양쪽 좌우 어깨. 늘어난 팔의 손가락 끝은 무릎보다도 아래까지 도달하여, 극단적으로 몸을 앞으로 구부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지금에서는 바닥에 닿을 것만 같다. 머리카락은 굳어서 솟구치고, 이는 날카로운 이빨이 되어 입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피부는 지나치게 하얗게 물들고 군데군데 검은 얼룩이 떠올라보인다. 하반신의 근육도 두 배로 부풀어 올라 발끝만으로 균형을 잘 잡고 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눈동자뿐만 아니라 안구 그 자체가 업화의 붉은 빛을 발하며, 온몸에서 폭풍과 같은 힘이 매 순간마다 점점 거대해져 간다.
그것은 리키가 아니었다.
전투형 에바의 완성된 형태인 제르엘이 해방된 모습이었다.
텐마와 타이지는 간신히 그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서 있던 자리에 주저앉아 그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리키가, 리키가 아니게 되어 버려."

이사나가 힘겹게 짜낸 그 말은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지금의 사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리키, 왜 그렇게꺼지 혀여먼 허는 거여."

타이지의 말도 이제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시선 끝에는 단 한 사람, 이카리 신지만이 서 있었다.
신지의 오른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리키의 변화에 동조하듯이 부풀어 오르고 검붉게 변색되었으며, 손가락 끝은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킨다. 신지는 폭주하는 힘을 필사적으로 제어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시퍼런 칼날 위에 달걀을 쌓아 올리는 것과 같은 절망적인 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거칠게 흘러드는 탁류와도 같은 힘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계속 흘려 보낸다.

"뭐여, 멍청이 등에."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타이지였으며, 곧바로 텐마와 이사나가 그 뒤를 이었다. 좌우 양쪽 어깨뼈 부근에 얇은 빛의 막과 같은 것이 떠올라 있다. 그것은 떨리고 있는 신지의 오른팔에 감응하듯 조금씩 그 크기를 더해 간다. 처음에는 활엽수 잎사귀 같았던 막은 부채 크기로, 조금 큰 후라이팬 크기로, 그리고 곧바로 유리창만한크기로 성장했다. 그 때쯤에는 리키를 제외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것을 확인 했다. 좌우로 펼쳐진 한 쌍의 빛. 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는 하나면 충분했다.
날개다.

"신지님께 천사의 날개가."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도 잊은 채 미즈호가 작게 중얼거린다.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양쪽 끝의 거리가 2 미터를 넘었을 즈음 날개는 성장을 멈췄다. 이미 오른팔의 이상한 떨림은 멎어 있었으며, 굵기도 이전처럼 돌아와 있었다.

"저 녀석, 폭주허는 힘을 가다듬어서 등에 「벽」으로 날개를 만들어 버린 거여."

"의식해서 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저 「날개」를 구성하는 깃털 같은 조각 하나하나가 전부 독립적으로 분리된 「벽」이다. 대체 얼마만큼의 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텐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몇 명이나 알아차렸을까.

"신지님, 아름다우셔..."

묶고 있던 붉은색과 금색과 검은색의 머리가 풀려 바람에 날렸다. 좌우로 색이 다른 눈동자가 결의에 찬 눈으로 리키라는 존재였던 제르엘을 노려본다. 굵기와 피부색과 길이가 다른 두 개의 팔이 마치 춤을 추듯 원을 그리고, 크게 부풀어 오른 가 슴을 펴고 자세를 잡았다. 이전보다도 눈에 띄게 길어진 두 다리를 크게 벌리고 자세를 낮춘다.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오른쪽 다리는 뒤로 뺀다. 그리고 신지의 등에 떠오른 복잡한 기하학적 무늬를 그리는 날개가 찬연히 빛을 반사시킨다. 옷은 찢어지고, 드러난 피부에도 미처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몇 개나 남아 있으며, 땀과 비와 침, 위액과 혈액, 그리고 진흙으로 더러워진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미즈호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도망치는 것도, 단념하는 것도 거부한 결의의 결정체였다. 일찌기 신지에게는 없었던 강한 의지의 힘이 거기에 있었다. 그 모습을 볼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 결의 안에 자신에 대한 마음이 있다. 그러한 사실이 미즈호의 모든 것을 충만하게 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으며, 눈앞에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볼 수가 있었다.
이제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신지님!"

그 말이 방아쇠가 되었다.
늘어난 리키의 두 팔에 네 장의 「칼날」이 나선형으로 휘감겼다. 조금도 낭비 없는 움직임으로 팔을 들어올리더니 눈앞에서 교차시킨다. 짐승으로 변한 리키가 아케이드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포효했다.

"그아아아아~~~~~~~~~~~~~~~~~~~~~~~~~~~~~~!"

팔을 휘둘렀다. 교차한 「칼날」이 맹렬한 기세로 신지를 향해 날아간다. 그와 동시에 제르엘이 뛰어오른다. 「칼날」을 피하거나 막아낸 순간을 노리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자신이 던진 「칼날」에 숨어, 필살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양팔을 힘차게 들어올린다. 나선형의 칼날이 착암기처럼 회전한다. 닿기만 하더라도 고 기 조각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
신지는 순간적으로 사태를 이해했다. 「칼날」을 피하면 그 순간을 노리고 들어온다. 그러나 「칼날」을 막아내더라도 움직임이 멈춘 순간을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의식이 가속하여 몸이 번개처럼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텐마가 신지의 모습을 놓쳤다. 투척된 「칼날」이 사냥감을 잃고 상점가의 건물을 몇 채나 쓰러뜨린다. 리키는 이성이 아닌 직감만으로 뒤돌아보았다. 거기에 신지의 빛나는 오른눈이 있다.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회전하는 칼날이 감긴 기다란 오른팔이 신지를 덮친다. 그러나 피는 날리지 않고 그 대신 빛을 발하는 깃털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시간이 점성을 띠었다.
서서히 춤추는 몇 백, 몇 천 장의 깃털. 그 중의 하나가 리키의 「벽」에 닿았다.
불꽃이 일어나고 「벽」이 한 장 사라진다. 여기에 연쇄 반응을 일으키듯 차례차례깃털이 「벽」에 간섭하여, 마치 작은 번개와도 같이 빛을 발하며 「벽」을 중화시켜 나간다. 위기를 감지한 제르엘은 밑에서부터 왼팔을 휘둘렀다. 태풍의 거센 바람보다도 강렬한 기세로 깃털이 날아오르고, 조금 트인 시야에 열풍을 두른 번개가 파고들었다.
제르엘을 지키는 스물여덟 장의 「벽」은 모두 중화되어 있었으며, 들어올린 오른팔은 한참 머리 위쪽.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제르엘의 두터운 앞가슴의 중앙에서 약간 왼쪽 부위를 신지의 오른 손바닥이 힘껏눌렀다. 비록 그 속도는 매우 빨랐지만 절망적인 체격 차이로 봤을 때 그것이 제르엘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실제로, 한 순간 움직임을 멈춘 제르엘이었으나, 바로 착암기로 변한 양팔이 위아래에서 동시에 신지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신지를 꿰뚫기 직전, 모든 것을 찢어 버리는 「칼날」

의 회전이 멈춘다. 그것만이 아니다. 제르엘의 온몸이 말그대로 정지했다. 신지는 아직도 그 오른손을 제르엘의 가슴에 대고 있다. 이를 악물고 번쩍거리는 오른눈과 깊고 맑은 왼눈이 제르엘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영원처럼 느껴지는 한 순간이었다.
제르엘의 입술에서 붉은 핏방울이 흘러나오고, 온몸을 에워싸고 있던 살기가 사라졌다. 그대로 거대한 몸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수직으로 떨어진다.
제르엘의 몸이 타일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종료를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단 한 가지 모두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일도 있었다. 신지가 이겼다. 다른 누구도 아닌 리키에게.






자신의 거친 숨소리 이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손끝조차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 그것이 아스카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달렸는지, 이곳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에 있었다. 어딘가의 그늘에 간신히 몸을 숨기고 필사적으로 숨을 고른다.
순수한 공포가 심장을 거칠게 움켜쥐고 있는 것만 같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여유는 흩어져 사라지고 없었다. 비록 미묘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친근하게 대했던 인간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했다. 아라시의 온몸을 꿰뚫은 붉은 빛. 그리고 온몸을 쥐어짜며 그가 외친 말. 「도망쳐」라고 했다.
어쩌면 그가 금방이라도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달콤한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느껴졌던 아라시의 기척과 같은 것이 지금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라시는 이제 없다.
그것은 곧 이 빌딩 안에서 자신의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한 순간 레이와 카오루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바로 머리에서 지웠다.
불쾌한 감정이 거무칙칙한 뱀이 되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아무도 구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
아라시가 찔려 죽기 직전에 들렸던 그 목소리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들어 본적이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그 목소리의 주인을 상상한다는 것조차도 두려웠다.
그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둡다.
한여름 밤, 그것도 정전으로 에어컨도 멈춰 있는 상태일 텐데도 끝이 없는 추위를 느낀다.
누구라도 좋다.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문득 소년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바보 같은 일이다. 또 그런 녀석의 얼굴이 떠오르다니.
그러나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런 것을 느낄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녀석이 생각났을 뿐인데 어째서.
미덥지 못하게 웃는 그는 어쩌면 정말로......

어둠 속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딱딱한 구두 특유의 잘 울려 퍼지는 소리가 하나. 거리는 충분히 떨어져 있었지만뚜렷하게 들렸다.
이쪽으로 오지 마.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에서 외쳤다.
그러나 발소리는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다가온다.
규칙적으로,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마치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숨을 멈췄다. 두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될 수 있는 대로 몸을 작게 움츠린다. 그러는 동안에도 발소리가 다가온다. 곧바로 이쪽을 향해서 오고 있다. 이 암흑 속에 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걸음걸이. 대체 어떤 녀석이지.
갑자기 발소리가 멈췄다. 아스카의 감각으로는 10 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는 것같았다.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가 그 소리의 크기에 온몸이 떨렸다.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냉정한 부분이 들릴 리가 없다며 기우를 떨치려 한다. 그렇지만 또어쩌면. 자신의 머릿속에 혼란의 싹이 있다는 것을 아스카는 용서할 수 없다.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한다. 난 괜찮아, 냉정해져야 돼, 숨을 쉬어, 들킬 리 없으니까.
또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발소리가 멀어져 간다.
살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간다. 그래, 멀어져. 이쪽으로 오지 마.

"아스카짱∼ 어디에 있니∼"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소리로 아라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조금씩 멀어져 간다.
저 발소리의 주인이 아라시였단 말인가?
갑자기 눈물샘이 느슨해진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공포에서 해방된 안도감.
아무리 부정해도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것은 무서웠다.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소년이 살아 있었다는 안도감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라시, 이쪽이야."

참지 못하고 일어나서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런 곳에 숨어 있었냐."

뒤에서 거무칙칙한 목소리가 취기를 내뿜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보일 리 없는 어둠 속에 붉은 빛의 점이 몇 개나 떠올라 있었다. 그 빛이 희미하게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곤충의 겹눈 같은 기분 나쁜 마스크를 쓴 일곱 명의 병사들.

"애먹게 만드는군 그래."

감정을 불쾌한 방향으로 자극하는 들은 적 있는 목소리. 예전에 식당에서 말을 걸어 왔던 그 야만적인 남자인가.

"이런 모습이지만 다시 한 번 소개하지. 나는 노엘. 에바 R 중의 한 사람이며 너의 운명을 쥐고 있는 자이기도 하다."

반사적으로 손이 움직였다. 그러나 온힘을 다한 따귀는 너무나도 간단히 노엘에게 잡혔다. 두터운 가죽 장갑의 감촉. 차갑다.

"지금부터 너를 주객으로 한 파티를 시작한다. 우리들 모두가 상대해 주지. 기뻐하라구, 모두 미남들이니까 말이야."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얼굴을 가져간다. 입을 가리고 있던 스커프를 살짝 치웠는지 비릿한 입냄새가 희미하게 코를 찌른다.

"조금 전까지 너와 함께 있던 자식을 기억하냐?"

맞다. 아까 들렸던 아라시의 목소리는 대체 뭐였다는 말인가.

"건방지게 반항하길래 정성껏 환영해 줬지. 마침 목이 말라서 헌혈은 좀 받았다만.
뭐, 너무 많이 마셔 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노엘이 숨을 내쉬었다. 비릿한 절망의 냄새. 이것은... 피냄새. 그것도 아라시의?!@#$
"조금 전 목소리는 녹음기로 합성한 거지. 잘 만들지 않았냐? 그 녀석은 지금쯤 자기가 만든 피의 바다에 빠져 죽은 게 아닌가 모르겠군 그래."

아스카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끊어졌다.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마구 휘둘렀다. 전해져 오는 것은 단단한 아픔뿐. 그래도 그만둘 수는 없다. 모든 분노를 담은 무릎 차기가 노엘의 가랑이에 작렬한다. 그러나 비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기운 좋은 아가씨군. 점점 더 마음에 들었어. 게다가 애무는 좀 더 부드럽게 하는 거라구. 격렬한 게 좋다면야 생각해 보겠다만."

느닷없이 오른뺨에 아픔이 치달았다. 맞았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걸린다.

"얌전히 있으라구, 밤은 기니까 말이야."

간소한 원피스의 멱살을 잡혔다.

"자아, 쇼타임이다."

"쪼―까 기다려 봐."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느슨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까지다, 싸구려 놈팽이 자식들. 내 앞에서 가랑이 사이의 데린저(Derringer) 를 뽑기라도 했다간 내 모제르(Mauser)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아스카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겹눈 마스크를 쓴 그들에게는 복도 저편에서 유유히걸어오는 그 남자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어둠 속에 녹아들 것 같은 검은색 카우보이 모자와 검은 가죽 재킷과 바지. 그리고 가죽 부츠. 가슴 부근의 스커프만이 달빛처럼 하얗다. 깊숙이 눌러쓴 카우보이 모자에서 앞머리가 살짝 삐져나와 보이 고, 허리 양쪽에는 총잡이처럼 총이 두 자루 달려 있다.

"죽여라."

노엘의 명령은 간소했다. 다섯 명이 미끄러지듯이 어둠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의 두손에 마치 마법처럼 총이 나타난다.

"지금이다, 요우코!"

좌우의 모제르 M712 가 굉음을 내는 것과 꺼져 있던 복도의 조명에 불이 들어오는 것은 동시였다. 눈부신 빛과 소리만을 내는 폭동 진압용 모의탄이 미친 듯이 작렬한다. 에바 R 들의 증폭된 시야가 새하얗게 표백된다. 바로 암시 스코프가 휘도 조정을 하지만 망막은 그렇게는 안 된다. 그래도 벌 수 있었던 것은 한 순간. 그러나그녀에게는 한 순간으로 충분했다.
노엘이 그것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빼앗긴 시야 대신 청력이 증폭된 덕분이었다.
공기를 가르며 그의 팔만을 정확히 노린 뭔가가 덮쳐 왔다. 반사적으로 피한다. 방인(防刃) 프로텍터만이 아슬아슬한 차이로 조각조각 잘려 나간다. 잡고 있던 아스카의 몸이 바닥에 내던져진다. 그런 아스카의 허리를 가느다란 팔이 감아 마치 선풍처럼 그녀를 낚아챘다. 노엘이 손을 뻗었지만 아스카의 붉은 머리카락 하나 잡지못한다.

"확보했다."

조금 억누른 듯한 소녀의 목소리가 아스카의 귓가에서 들렸다.

"라져!"

대조적으로 쓸데없이 쾌활한 목소리가 외쳤다. 동시에 또다시 조명이 꺼지고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다. 성대한 소리와 함께 섬광 그레네이드가 몇 개나 작렬한다. 오감이 민감하기에 에바 R 들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런 와중에도 경이적인 속도로 시야가 회복되었을 때, 노엘의 예상대로 사냥감과 방해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건방진 짓을 해 주시는군...!"

불을 뿜을 듯한 기세로 노엘은 분노를 내뿜었다.






"가고 싶나?
어둠 속 깊은 바닥에서 더 깊이 내려간 곳. 돔 형태의 묘지라 불리는 장소에서 카이 요시하루는 곁에 서 있는 소녀에게 물었다.

"......아니요."

아야나미 레이의 겉모습과 릴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가."

카이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묘지는 어슴푸레한 간접조명에 비춰진 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위에 위치해 있는 제레 빌딩과는 전원 계통이 따로 나뉘어져 있거나 어딘가에 자가발전 설비가 있는 모양인지 에어컨도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돔의 중심에 우뚝 선 하얀 원기둥도 빛을 반사하여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그것을 올려다보는 카이는 단풍나무로 만들어진 흔들의자에 몸을 내던지듯 기대고 앉아 있다. 곁에는 릴리스밖에 없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방대한 설비도 지금은 철거시키고 없다.

"이제는 필요없다."

카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유일하게 그 흔들의자와 사이드 테이블만을 남겨 두게 했다. 사이드 테이블에는 와인 글라스가 네 잔. 적포도주가 한 병.

"이곳에서 그 때를 기다리겠어."

그리고 옅은 잠을 되풀이하며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억제한 에어컨 소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정적만이 그곳에 있었다.
이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지 릴리스도 정확하게는 기억하고 있지 않다.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이러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느닷없이 돔에서 유일하면서 거대한 문이 진동과 함께 열렸다.

"꽤나 이르신 도착이구나."

카이는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들어온 것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요시하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여성치고는 조금 낮은 편인, 마치 따져 묻는 듯한 목소리가 묘지에 울려 퍼진다.
릴리스는 뒤를 돌아보아 그곳에 니콜라스를 데리고 있는 호바 이브를 발견했다.

"설비를 전부 내보내 버리다니, 제정신이야?"

낭비 없는 율동적인 걸음걸이로 이브가 카이에게 다가간다. 릴리스 따위는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준비는 갖춰져 있어. 약속은 지키고 말고."

지친 듯한 카이의 말투. 이브는 조금 처진 눈에서 불쾌함을 보이고 있다.

"바르디엘(카스미)이 마지막 조정을 해 주고 있어. 그것도 이제 곧 끝날 테지."

거기서 처음으로 카이는 옆에 서 있는 이브에게 시선을 돌렸다.

"테이아이엘만 무사히 이곳으로 와 준다면 예정대로 너의 제타르를 재조정할 수 있지. 그리고 너의 「시간」은 멈추고, 인류는 두 개째의 사과를 손에 넣게 되는 거다."

카이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 말을 이었다.

"아무런 걱정도 필요없다구."

그 말은 이브의 등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니콜라스의 마음에 냉수를 끼얹었다.

"부디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래 요시하루. 당신 손에 당신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걸 잊지 않도록 해."

이 여자라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박력이 있었다.

"알고 있어. 그것보다도, 위쪽이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나?"

"태풍에 뒤섞여서 교단의 망령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어. 금방 결말이 나겠지만 말이야."

"그러기를 기대해야겠군. 태풍이 부는 밤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피가 들끓을 테니까말이지. 망령 중에도 축제를 좋아하는 녀석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군."

"잡담은 그 정도로 해 둬. 잠시 동안 이곳에 있겠어. 앉을 장소는 없어?"

"헤븐즈 도어 바깥에 철거한 소파가 하나 있을 거야."

이미 시선을 원기둥으로 돌린 카이는 흥미 없다는 듯이 말했다.

"소파를 가지고 오도록 해."

이브는 니콜라스가 아니라 릴리스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연약한 소녀에게 그런 일을 시키지 않아도 네 곁에는 용감한 호위가 있잖나. 니콜라스에게 시키는 게 어때."

카이의 나른한 목소리가 이브의 신경을 거스른다.

"이 아이는 내 호위야. 게다가 내 아이들에게 그런 잡일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군.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릴리스, 소파를 가지고 와 주렴. 단헤븐즈 도어 앞에 있는 것은 망가질 때가 다 되었으니, 위층의 집무실이나 객실에 서 튼튼한 것으로 가지고 오렴. 호바 극동 매니저께 어울릴 만한 훌륭한 것을 말이야."

잔뜩 비꼰 말투였지만 이브는 완전히 무시했다.

"하지만, 카이씨."

"나라면 괜찮아. 기분도 괜찮고 말이야. 계속 이곳에만 있었으니 가끔은 다른 장소에도 가 보는 것이 좋아. 이 카드 키를 가지고 가렴."

카이는 가슴의 호주머니에서 전용 엘리베이터에 사용하는 카드를 건넸다.

"......네."

그래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릴리스를 이브는 시선만으로 재촉한다.
몇 번이나 뒤돌아보면서 릴리스는 헤븐즈 도어 너머로 사라졌다.

"흥, 꽤나 잘 길들여 놨구나."

"착한 아이야.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주지."

"천박하기도 하지. 어리석기는."

위에서 깔보듯이 이브는 그렇게 평했다. 카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잠이 든 것처럼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흥. 이야기 중에 잠들다니, 나이를 먹기는 먹었구나."

에바로 시간을 멈춘 이브의 말도 카이에게는 들리고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다.
그저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무릎을 꿇은 채 간신히 숨을 이어 가고 있는 신지가 고개를 들었다.
아스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완전히늦게 되어 버리기 전에 움직여야만 한다.
일어나려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피로 가 몇 겹이나 쌓여 온몸에 휘감기는 것만 같다.

"무슨 일이여? 멍청이."

텐마가 부축한다.

"가야 돼. 아스카가 부르고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허지 말으. 니 녀석, 지금 자기 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고 있지?"

"그래. 게다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텐마가 바닥에 눕혀쳐 있는 리키의 배를 가리켰다.

"미즈호를 구하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하다."

리키의 모습은 쓰러져 있는 동안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길었던 두 팔도, 부풀어 올랐던 온몸도 원래대로. 다만 그 상태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저기저기, 리키는? 리키는 죽어 버린 거야?"

울먹이는 눈으로 되묻는 것은 이사나.

"아직 죽지는 않았다. 신지군의 일격은 외부로부터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파동으로 내부에서 작용하게 만드는 것인 모양이군. 나는 잘 알지 못해서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이것이 그 때 리 노인이 너에게 보였던 기술인가?"

텐마의 물음에 신지는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겼다.

"정신이 없는 상태였어서 저기... 잘 모르겠어."

"그 날개도 말이여?"

타이지가 끼어들지만 신지는 눈을 깜빡거릴 뿐.

"날개란 게 뭐야?"

"그쪽도 무의식적으로 헌 것인감. 믿음직헌 건지 아닌지, 대체 어느쪽이여?"

"아니, 지금 그 이야기는 됐다. 그것보다도 리키다. 신지군의 일격에 당하고도 내장에 손상을 입지는 않은 모양이다만 심장과 온몸의 혈액의 흐름이 흐트러져 버린상태군. 몸 안의 에바가 지금은 전혀 활동하고 있지 않다. 가사 상태라고 하는 것이 가장 알맞는 표현일 것 같다만..."

텐마의 목소리가 뒤로 가서 흐려진다.

"문제는 이 상태에서 배를 가르면 리키가 어떻게 되어 버리냐는 거여."

그것이 자신의 의무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타이지는 모두를 보았다.

"적어도 무사하지는 못하겠지."

멍하니 있는 미즈호를 부축하는 츠바사.

"에바가 활동을 멈췄다는 건 보통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거잖아. 아픔이 중화되지도 않고 상처도 아물지 않아. 어떤 병균이 있을지 모르는 데다 그것을 물리치지도 못해."

짙은 고뇌와 절망이 모두의 표정을 흐려지게 만든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한 가지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츠바사와 마찬가지로 미즈호를 끌어안듯 부축하고 있던 사요코가 타이지를 본다.

"그려. 누가 리키의 배에 손을 집어넣느냐, 구먼."

타이지는 한 순간 신지를 보았지만 바로 시선을 떨구었다.

"내가 허겄으."

누워 있는 리키의 옆에 무릎을 꿇는다. 입고 있던 셔츠는 찢어져 리키의 상반신은 이미 알몸이다. 그 배를 향해 타이지가 손을 뻗는다.

"잠깐만."

힘없는 목소리가 타이지의 손을 멈추게 했다.

"니 녀석은 입 다물고 있으. 이건 내가 헐 일이여."

"리키씨는 내게 그것을 시키고 싶었던 거야."

거의 쓰러지는 것처럼 타이지 옆에 신지가 앉는다.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 버리면 뭐 때문에 그런 모습까지 해 가면서 싸웠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려."

"신지님!"

사태를 이해하고 눈물을 흘리는 미즈호. 그 눈물방울이 목에 채워진 불길한 목걸이에 떨어져 튄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줘. 아주 잠깐이면 되니까."

신지는 웃어 보였다. 그것 말고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안 돼. 그런 짓을 했다간 리키가 죽어 버릴 거야."

리키를 감싸듯이 이사나가 몸으로 덮었다.

"안 된단 말이야. 절대로 안 돼!"

"그려, 이 녀석은 동료인 우리들 손으로 매듭을 지어여먼 혀. 더 이상 니 손을 빌릴 수는 없으."

타이지도 양보하지 않는다.

"니는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혀서 빌딩으로 향혀. 서둘러야 허는 이유가 있잖으?"

"그럴 수는 없어."

리키를 쓰러뜨린 신지의 오른손이 타이지의 어깨를 잡는다.

"게다가,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는 너무 위험해."

타이지는 그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오른팔이 희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료의 배를 가른다는 행위의 의미를 머리보다 몸이 이해하고 있었다.

"너는 사람을 죽여 본 일이 있나?"

곁으로 다가온 텐마가 계속해서 물고 늘어진다.

"미즈호를 지키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너에게 리키를 죽이는 일이 가능한가? 언젠가 후회할 거다. 자신을 책망할 때가 오게 돼."

"그래, 그걸 네가 짊어질 필요는 없어. 미즈호도 우리들 동료야. 우리들이 구할 테니까."

사요코도 달려와서 신지의 오른손을 잡는다.

"그러니까 부탁이야. 너는 손을 대지 말아 줘."

신지는 마치 피곤해서 잠들어 버린 것 같은 리키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이해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이 일을 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분했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살며시 오른팔에 매달리는 사요코의 손을 잡았다.

"계속 함께 살아왔던 동료에게 상처를 입히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이건 저나 기억을 잃어 버린 미즈호만이 가능한 일이에요. 그리고, 낡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일은 남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자리에서 지금 그것을 할 수 있는 건 역시 저뿐이에요."

사요코가 힘없이 손을 놓는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신지군, 괜찮은 거야?"

문득 보니 리키를 사이에 두고 정면에 미야가 있었다.

"응. 내가 리키씨의 몫을 짊어지겠어."

"......알았어. 나도 조금뿐이지만 함께 짊어질게."

미야는 리키의 커다란 오른팔과 오른쪽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리키의 몸에 비하면 어린아이처럼 여리고 믿음직 하지 못한 손으로.
신지의 오른손에 빛이 깃든다. 「칼날」이 나타나고 그것이 리키의 배를 향한다.

"미안해요."

미야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신지가 중얼거렸다.

"안 돼애―!"

신지의 「칼날」이 리키에게 닿기 직전, 긴장되어 있던 공기를 소녀의 외침소리가 깨뜨렸다. 모두의 눈이 아케이드 입구를 향한다. 비로 흠뻑 젖은 잠옷 차림의 어린여자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마이, 어떻게?"

미야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중얼거린다.

"안 돼, 리키를 괴롭히지 마!"

흐트러진 머리에서 빗방울을 떨어뜨리며 마이가 달려온다. 그 시선은 오로지 리키만을 응시하며 다른 누구도 보고 있지 않다.

"리키, 리키. 일어나, 리키. 일어나야 돼애."

물어뜯을 것 같은 기세로 리키에게 매달리는 마이. 열심히 그 몸을 흔들지만 리키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마이짱, 비켜 줘. 나에게는 시간도 선택의 자유도 없어."

"안 돼, 그런 거 모르겠어."

"미안. 내게는 이렇게 하는 방법밖에 없어."

"부탁이야. 리키를 죽이지 마!"

어울리지 않을 만큼 커다란 안경 뒤에서 푸른색의 오른눈과 녹색의 왼눈이 눈물로 울먹이고 있었다.

"리키씨가 바란 일이야."

"그렇다고 왜 리키가 죽어야 되는 거야?"

"리키씨는 스스로의 목숨을 걸어 나를 단련시키고 시험하고, 그리고 책임을 넘기려는 거야. 너희들을 위해서."

신지는 마이의 두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러기 위해 나에게 자신을 죽이게 할 생각이었던 거야. 나를 자신을 대신할 사람으로 하고 싶은 거야."

마이를 제외한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말리려고 했던 것이다. 자신들과 똑같은 경우에 처해 있지 않은 신지를 자신들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다. 이 소동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서로 다른 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리키는 동료들을 위해 새롭게 신지를 리더로 선택한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어. 미즈호를 구해야 돼.
그리고 되돌아가지 못하게 각오를 다져야 돼. 모든 것을 알면서 자신을 죽이게 하려는 거야. 게다가 누군가를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희생하는 강인함도 필요하다고 리키씨는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해."

신지는 가만히 마이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부디 알아 주었으면 한다. 지금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언젠가 알아 준다면...

"그것이 강인함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마이의 푸른색 오른눈에 희미하게 붉은색이 섞여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마이의 등뒤에 메이가 서 있다.

"그것은 강인함이 아닙니다. 도피예요. 리키도 당신도 너무 쉽게 결론을 내 버리고 있지는 않나요?"

메이는 살며시 마이의 어깨에 얹힌 신지의 손을 잡았다.

"모두가 살아날 최선의 방법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는 것이 진정한 강인함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게다가 당신이 내린 결론은 이윽고 미즈호까지도 괴롭히게 될 거예요."

튕기듯이 신지는 미즈호를 보았다. 미즈호의 눈물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이제서야알게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보면 미즈호의 손이 죽음의 목걸이를 움켜잡고 있었다.

"미즈호는 당신에게 살인을 저지르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상냥한 아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런 희생도 없이 이 상황을 회피할 방법이 없잖아요."

신지는 흔들리는 결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듯 반론한다. 마음이 약해지면 두 번 다시 리키의 몸에 손을 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없다. 리키의 말을 믿는 다면 미즈호의 목걸이는 시한 방식으로도 되어 있다. 더군다나 아스카 일도 신경쓰인다.

"방법은 있어요."

분명하게 메이는 대답했다. 놀라움과 함께 신지의 색이 다른 좌우 양쪽의 눈이 메이의 색이 다른 눈과 겹쳐진다.

"적어도 누가 죽는다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정말로 정말이야? 리키는 살 수 있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마이에게 생긋 미소지었다.

"물론이야, 마이. 그러니까 이번에는 리키와 사이좋게 지내 줘."

"응!"






*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여러 가지로 힘든 두 달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이것으로 고작입니다.
아직 완결로 향해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만, 인내심에 자신이 있으신 여러분들께서는 다음 편을 느긋하게 기다려 주세요.
그렇지 않으신 분은... 어찌할까요.
어쨌든 간에 최근 들어 점차 심하게 쇠퇴하고 있는 에바의 새로운 소설이라도 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에바가 시작한 가을로부터 벌써 7 년째입니다만, 지금이기에 쓸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 나와 줄 것을 조금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 곳에 좋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고.
다음 편은 솔직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직장은 꽤 힘든 곳인 모양이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으로 스트레스도 늘어날 거라 생각합니다.
그 도피의 일환으로 글이 잘 써지면 좋겠는데, 말이죠.
올해 안 갱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그럼, 다음에 또.
nary
2002/11/13

*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본의 (C)GAINAX 의 작품입니다.
* 「Genesis Q」는 成重貴幸 씨의 인터넷 홈페이지 「Genesis Q」에 연재중인 에반게리온 팬 픽션 소설입니다.
* E-mail : 홍군(hebikun@hanmail.net) | nary(nary@big.or.jp)
* URL : 홍군(http://hebikun.egloos.com/) | nary(http://www2.big.or.jp/~nary/shumi.html)
* 이 글을 다른 곳에 옮기고자 하실 때는 사전에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 홍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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